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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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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大家)의 대화_브루스 월키와 강신택 박사
 글쓴이 : 관리자
 

*「히브리 유니언대」는 유대인 수재들을 가르쳐 랍비로 키워내는 대학이다. 특히 고대 근동어문학으로는 견줄 곳이 없을 만큼 압도적인 세계 최고로 꼽힌다. 또한 로마 바티칸·영국 성공회의 유력한 신부나 기독교의 유력한 목사와 신학생들을 특별 장학금을 주고 초청한다. 각각의 교계에서 유대인들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퍼뜨려주기를 바라는 기대감에서다. 초청한 학생에 대해서는 그 부인에게도 일자리를 갖지 못하게 하는데, 남편의 공부 뒷바라지에 전념하라는 뜻에서다. 그런만큼 풍부한 생활비를 지원한다고 한다. 박사과정이 어렵기로 유명하지만, 졸업만 하면 세계 유력한 대학에서 학장들이 직접 찾아와 졸업생들을 초빙해 간다고 한다. 그만큼 졸업생들의 자부심이 크다고 한다. 강신택 박사는 히브리유니언대에서 수메르어를 전공한 최초의동 양인이고, 지금까지도 유일한 동양인이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50명 정도였던 수메르어 전문가는 지금도 그 숫자에 별 차이가 없을 만큼 수메르어 전문가는 희귀하다.

수메르어(Sumerian)의 세계적인 권위자 강신택 박사가 지난해 수련회에 이어 올 해 수련회에도 여주를 찾았다. 손님이자, 강사의 신분이었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일반 성도’로서 참석했다. ‘히브리어-한국어 직역 성경’의 중보 출판과 원고 교정 문제로 귀국할 기회가 생겨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평강제일교회 성도들로서는 실로 큰 복이 아닐 수 없었다. 브루스 월키(Bruce K. waltke)라는 신학계의 거장이 첫 한국 방문에서 여주 수련회의 강사로 나선 그날, 또 다른 세계적 ‘대가(大家)’와 함께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두 거장은 수차례 만나, 평강제일교회 수련회와 구속사 시리즈 등을 놓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이들의 만남을 누가 궁금해 하지 않으랴.

1년 만에 다시 뵈니 기쁩니다. 두 번째 만남이지만 우리 성도들은 강 박사님을 진심으로 한 식구로 느끼고 있는데, 알고 계신가요?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손님이 아닌 식구로서 참여한 이번 수련회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정말 그분들(성도들)에게 존경심이 납니다. 그 더운 날, 저는 의자에라도 앉았죠. 바닥에 앉아 배우기에 정말 열심인 그분들에게 존경심이 나죠. 그 분들이 이렇게 열심히 하니 저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참석한 브루스 월키 박사는 “이런 교회가 지상에 없다.”고 하더군요. 무엇보다 성도들이 그렇게 열심히 강의를 듣고 친절한 게, 아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예요. 특히 히브리어로 부른 초등학생들의 찬양에 감탄을 하시더군요. 어휴, 저도 놀랬어요. 쩌렁쩌렁 나오는 게. 저도 아까 다시 들었는데 (강 박사는 이날 히브리어를 배우고 있는 초등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메르어 강의를 했다) 월키 박사가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자기가 참 배울 게 많다”면서 “강의한 것보다 배운 게 많더라.”고 했어요.(월키 박사는 “초등생들의 히브리어 찬양 때 눈감고 발음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체크했는데 정확한 발음이었다.”고 사석에서 말하기도 했다.)


월키 박사와 무슨 대화를 나누셨나요?
(미리 밝히지만, 강 박사는 이 대목에서는 번번이 답변을 에둘렀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사적인 대화를 공개하는 것을 꺼렸던 듯 보였다.)

서로 처음에는 몰랐는데, 대화를 해보니 이런저런 인연이 겹치더라구요. 하버드대학에 있던 알처라는 교수,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던 롱만이라는 친구, 야콥슨이라는 수메리안의 대학자 등 저와 아주 가까웠던 사람들과 절친했다는 거예요. 알처는 구약학의 최고로 꼽혔는데, 수메르어는 전공이 아닌지라 저한테 늘 물어오곤 했죠. 1971년 7월 이라크 정부의 특별 초청으로 이라크 전역의 고고학 연구대상지역을 순회한 적이 있는데, 월키 교수는 당시 잠깐 바그다드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수메리안(수메르어)은 왜 공부하게 됐고, 히브리 유니언대학은 어떻게 갔느냐, 박 아브라함 원로목사님은 어떻게 만났느냐 등등 묻길래 이러저러한 일들을 얘기해 주었죠. 이 과정에서 수메르어로 *여주와 주문진 등 이름의 뜻을 설명해 주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지난번에 강의했듯, 여주는 수메르어로 ‘i-a-zu’로 풀 수 있는데, ‘i’는 기름이고 ‘a’는 물이 흐르는 형상, ‘zu’는 지식을 뜻하죠. ‘물과 기름을 아는’이란 뜻이죠. 고대에는 의사는 ‘물을 아는 사람’으로 불렸는데, ‘예수’의 어원도 ‘a-zu’에서 나왔죠. 월키 박사도 이미 알고 있는 언어학자들의 정통 학설인데, 그것이 여주의 수메리안식 해설과 일치하니 놀랬던 거죠. 여주에 엄청난 양의 물이 터진 게 우연이 아니라고요. ‘몸에 있는 소금’을 의미하는 주문진의 뜻에도 그랬고요.
성경 번역 중에 어떤 것(번역본)이 가장 잘됐고,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을 놓고 대화가 있었어요. (월키박사는 「NIV(새국제성경)」, 「NASB(새미국표준성경)」, 「뉴제네바 스터디바이블」, 「개혁주의 스터디바이블」, 「구약원어신학사전」, 「뉴인터내셔널 구약신학 및 주해사전」 등의 번역 및 편집인이었다.)

히브리 원어 성경에는 블랭크(빈 곳)가 많아요. 말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이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성경 번역은 그런 대목을 채워넣으냐 마느냐의 문제입니다. ‘있는 말만 그대로 해석한 뒤 살을 덧붙이느냐. 아예 표현을 바꿔서 뜻을 살리느냐.’의 문제란 얘기죠.
월키 박사는 “부분별로 번역해 놓은 것이 가장 좋고 실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단락별로만, 단어와 구절 내에서만 해석을 하는 것이죠. 채워넣는 번역은, “언제나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틀린 것은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시더군요. 진실된 얘기입니다. 대신 구절만의 해석은 말이 연결이 되지 않는 단점이 있지요. NIV는 채워넣는 일을 피하고 의미를 살려낸 번역본입니다. KJV(킹제임스버전)는 그 블랭크를 좀 더 채워넣은 것이고요.



블랭크(빈 곳)는 누락을 의미하나요? 왜 빈 곳이 생긴 거죠?
히브리어의 특징입니다. 부부간이나 친구지간처럼 친한 관계에서의 대화에서는 주어, 목적어를 빼먹기도 하고 정황 설명을 건너뛰는 일들이 많지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얘기하는 장면에도 그런 대목이 많아요.
월키 박사는 저 같은 동양인이 왜 수메르어를 전공했는지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저는 수메르어가, 그리고 수메르 문화와 많은 유사성을 갖는 동양의 문화가 성경의 문화를 더 들여다보게 하고, 나아가 문맥을 더 잘 이해하게 한다고 했지요. 특히 한국말은 수메르어의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는 말이지요.
어째서 그러냐고 하길래 출애굽기 4장 24절을 한 예로 들었습니다. 모세가 아론을 만나 이집트로 직접 들어가기 직전, 하나님이 모세를 추격해와 죽이려 하셨지요. 어딘지 어색한 상황입니다. 내일이면 이스라엘을 구출하러 이집트로 들어가야 하는데 말이죠. 왜 죽이려 하나? 이 대목에서 블랭크, 블랭크가 여러 번 나옵니다. 문장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급히 달려오셨다’ ‘모세에게 요구하셨다’ 등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는 밑도 끝도 없이 ‘그가 죽는 것’이 등장하죠. 무엇을 요구하셨는지에 대한 대목도 없어요. 원문을 구절별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24절 그리고 길에서, 숙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곧)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급히 달려오셨었다. 그리고 그는 (모세에게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벨 것을) 요구하셨었다. (…이집트인들의 장자들을 치는 천사들이) 그를 죽일(까 염려되어서이다). 25절 그러자 칲포라는 돌칼을 취했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자기 아들의 포피를 베었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자신을 그(=모세)의 양발 앞으로 다가가도록 했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모세에게 (할례를 베풀면서) 말했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에게 피들의 신랑이시기 때문입니다.” 26절 그리고 그(=하나님)는 그로부터 떠나셨다. 그때 그 여자는 할례들과 관계해서 (모세를) “피들의 신랑”이라고 말했었다.


당시 모세는 주춤했던 것 같습니다. 이때 십보라가 나섭니다.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요. 이어 “ (나가아)”라는 히브리 원어가 나옵니다. ‘던지다’는 말로 번역됐는데, 목적어가 없어요. ‘(할례를 끝낸 뒤) 양피를 던졌다’고 해석됐지만 목적어가 없으므로 ‘다가간다’는 또 다른 뜻으로 해석하는 게 정확할 수 있어요.(NIV는 각주에 ‘또는 모세의 발밑에 다가갔다.’는 뜻도 병행 표기했다.) 십보라가 모세 앞으로 다가가 ‘당신이 나에게 할례를 가했으니(첫날 밤 피를 흘리게 했으니) 나도(할례를)가한다’는 얘기를 한 것이지요. 그것이 그저 ‘피 남편’(하탄, )이라고만 해석된 거죠.
이게 바로 부부지간의 동양적 컬쳐(문화)입니다. 주저하고 있는 모세 앞에 십보라가 나선것이 말이죠.

그게 동양적 컬쳐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원문에는 모세보고 하라고 했지, 십보라한테 하라고 한 것 아니에요. ‘네가 네 아들에게 할례를 주라.’는 것인데 남편을 제치고 십보라가 했죠. 그리고는 금방 다음 순간에 모세에게 다가가 ‘할례를 해야하니 당신도 벗어.’라고 한것입니다. 부인이 독단적으로 나선 것인데 서양 사람들은 그렇게 못해요. 미국이 아무리 여성이 존중되는 사회라도 그런 일은 남편이 ‘예스(yes)’하지 않으면 못해요.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죠? 옳다고 생각하면 여자가 독단적으로도 일을 하곤 합니다. 수메르 컬쳐가 모계사
회이고, 히브리 민족도 그렇죠. 유대인 가정에서는 요즘에도 최고 파워는 할머니이고 다음이 엄마입니다. 우리나라도 사실상 모계사회랄 수 있죠. 이처럼 문맥과 정황 설명하는데는 컬쳐(문화)가 큰 도움이 됩니다.

제게는 십보라의 행동이 당연하게 보이는데, 제가 동양적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요? 월키수가 그러한 접근을 ‘동양적 문화의 산물’로 받아들이던가요?
그랬죠. ‘그런 데까지는 생각을 못해 봤다’고 하더군요. 서양의 부부관계는 일체라기보다는 각각 독립된 두 인격체가 조화를 이루고 사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전통적인 한국인 부부라면 서로의 생각까지 속속들이 알죠. 모세와 십보라가 그렇게 살았을 겁니다.
이 외에도 블랭크들에 대해 여러 차례 구체적인 대화가 오갔는데 컬쳐(문화)에 근거한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월키 박사의 학문적 수준은 따라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분의 그 박식함에는 제가 고개숙여야 합니다. 전 어림도 없어요. 그런 분한테 배우고 싶은 욕심도 나죠. 그런 점에서 감사했어요. 학문에 대한 서양적 접근법은 한가지를 알고 입증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책을 읽게하지요. 철학과 상식 없이는 따라가지 못해요. 강의 하나를 들으려 해도 수십, 수백권의 책을 읽게하거든요. 성경의 한 장면을 설명할 때도 소크라테스, 플라톤으로 시작해서 한참을 진행하다가, 맨 나중에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했다고 정리하는 식이에요.
여기서 서양학자들과 박 아브라함 원로목사님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서양학자들은 중간 설명이 깁니다. 세상 학문을 동원하지요. 박 목사님은 결론을 아시는 분입니다. 중간 설명이 필요없거든요. 그런 차이 등을 설명했더니 월키 박사가 깜짝 놀라시면서 “그렇게 생각 못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갖게 되신거죠? 그런 생각을 갖게된 계기가 있나요? 박 아브라함 목사님과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셨다든지 하는….
따로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은 없고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죠?
모세가 다른 사람하고 다른 대표적인 것은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1대1로 하나님이 다 보여 주셨죠. 대화가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이때 직접 깨닫게 해주신 것이지요. 인간의 책, 지식으로 깨달은 것이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된 것보다 앞설 수는 없지요. 박 아브라함 목사님이 3년반 지리산의 굴속에서 뭐하셨을까요. 하나님과 대화하셨겠죠. 아무도 모르는 지식을 하나님이 하나하나씩 다 던져주셨을 거라고요.

산속에서 도 닦으셨다는 분도 많은데…, 산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설명이 충분할까요?
저 개인적으로 예전에 산에 한 번 올라간 적이 있었지요. 바람 불고 무서워서 단 하루도 못 견디고 내려왔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특별한 것입니다. 영적인 문제이지요, 이것은. 영적 세계는 다릅니다. 지식으로는 되지 않지요. 다른 것은 묻고 싶지도 않고요.

그것은 학자적 자세는 아니지 않을까요?
모든 답은 성경에 있는데 사람들은 그게 어디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 아브라함 목사님은 1800번이나 읽으셨으니 뭐가 어디 있는지 다 아시지요. 사실상 외우고 계실거라고요. 성경이라는 원천 소스가 있으니 직접 가시는 거죠. 서양학자들은 세상 학문을 통해 돌아서 가는 거구요. 희랍 철학적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죠. 그러니 박 아브라함 목사님이 무엇에 대해 말하면, 거기에 그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저도 신학대학 다닐 때부터 스스로 발견하고 배우고 싶었지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어학이었어요. 어학을 4년간 준비하면서 영어는 물론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독일어, 스페인어까지 혼자 다해버렸지요.(그때 공부한 실력으로 독일어와 스페인어는 박사과정에 필요한 시험에까지 합격했다 하니 상당한 실력인듯 보인다.) 겨울방학 때면 3개월 동안 나오지 않고 어학만 가지고 씨름했어요. 몇시부터 몇시까지는 무슨 공부, 무슨 공부 하는 식으로요.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어요.
사실 그래서 전 남의 책 읽지 않아요. 사람들 훌륭한 지식은 전부 성경에서 나오는데, ‘그럼 나도 성경에서 찾지 뭐하러 다른 사람한테 얻느냐.’는 생각을 했었지요. 인터넷에서도 찾지 않습니다. 지식을 세상 사람에게 얻을 것이라는 생각하지 않아요. 히브리어 사전도 현대 사람이 만든 건 보지 않아요. 1800년도에 쓰인 것만 봤어요. 수메르어는 스스로 만든 사전을 보죠. 수메르어 전문가들은 대개 그렇게 해요.
브루스 월키 박사도 앞선 인터뷰에서 “대중적인 책은 읽지 않는다.”고 했다. “박사 논문 정도만 읽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가 말하는 ‘대중적인 책’이란 박사 논문급 외의 문서와 서적을 통칭하는 셈이다. 남의 책을 읽지 않는 이 두 석학들은 구속사 시리즈에 대해서 만큼은 높은 점수를 주었다.
각각 참평안 2012년 8월호 & 2013년 8월호(www.champyungan.com) 참조.

그럼 구속사 시리즈는 어떻게 읽게 되신 거죠?
처음에는 안 읽었죠. 영어로 된 제1권 「창세기의 족보」을 받아놓고 한참을 책상 위에 두었는데 어느날 슬쩍 보게됐어요.(그는 한글책보다는 영어책이 훨씬 읽기 수월하다고 했다.)
들여다보니 제가 원하는 정보가 거기 다 있는 거예요. 숫자와 연대, 족보에 히브리어까지 말이죠. 내용도 이질감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나중에 듣자니 저자가 성경을 1800번을 읽으셨다는데, 그런 분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유 없죠. 어떻든 간에. 이유 없어요.

성경을 더 많이 읽으셨다는 분도 있고, 1800독 했다는 사실을 안믿는 분도 있을 텐데요.
안믿는 사람은,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세요(Let them do it). 더 중요한 건 읽기만 한
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예요. 보통사람들은 읽더라도 조합이 안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박 아브라함 목사님도 정확히 하자면 혼자 읽으신 게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 거죠.
야곱이 돌베게 베고 잘 때 하나님이 사다리 위에 서신 것으로 돼 있죠?(창세기 28:12) 그런데 원문은 야곱의 옆에서 지켜보셨다는 의미예요(NIV는 ‘거기 그의 옆에서’라는 관주를 달았다.) 야곱이 밧단아람에 갔다가 돌아올 때까지 함께 동행해 주신 거죠. 박아브라함 목사님이 지리산에서 3년 반 계실 때도 항상 하나님이 항상 동행하셨을 겁니다. 박 목사님이 3년 반 지나 산에서 내려오실 때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셨을 거라고요. 노심초사 지키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웃음)

지난해에 오셨을 때 박 아브라함 목사님에 대해서 ‘우주적인(유니버셜)’이라는 표현을 쓰신 것도 그런 맥락에서인가요? 처음 뵌 분한테 쓰신 표현인데, 어떤 느낌에서 갑자기 쓰신 거죠?
‘아브라함’은 그 자체가 수메리안 이름으로 좋은 이름입니다. ‘라함’은 영어로 하면 멀티튜드(multitude·큰 무리, 많은)란 의미인데, ‘열국의 아버지’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신명기 32장 7절에 ‘옛날을 기억하고 역대의 연대를 기억하라’는 말씀이 있지요? 여기서 ‘옛날’(예모트 올람)은 태초의 개념까지 담은 단어이고, ‘역대’(도르바도르)는 영원의 의미를 갖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도 그렇게 확장됩니다.
그리고 박 아브라함 목사님이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지을 때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분이 맞다 하면 맞고, 틀리다 하면 틀리다는 것이지요.
옛날 집터를 닦을 때의 경험인데, 산을 부숴보면 가끔 큰 바위들이 나와요. 역사에서 가끔 큰 인물들이 나오는 것이 그런 이치인 것 같아요. 돌이 다 같은 돌이 아닙니다. 제가 볼때 박 아브라함 원로목사님은 큰 바위입니다. 작은 돌 취급해서는 안돼요.
월키 박사한테는 박 원로목사님이 남들보다 용감하신 분이라고 얘기했지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책으로 내셨으니까요. 오해받을 수가 있거든요. 저도 용감했으면 좋았는데, 전 그러지 못했어요. 남들에게 비난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죠. 아까 말씀드린 모세 할례에 관한 것, 예전부터 알기는 알았죠. 그러나 말 못했어요. 지난해 박 아브라함 목사님을 만나고 제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용감해졌다는 거예요. 히브리어 원어 성경의 빈곳, 블랭크를 채울 용기를 갖지 못했는데, 이제는 하려고 해요.

수메르어는 학문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나요?
인류 최초의 공통 언어가 수메르어입니다. 최초로 문자화 됐는데, 고대 중동 일대의 종족과 민족들은 각자의 말을 보유하고서도 문자는 수메르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뒤로가면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바이블 월드’에서는 언어는 달라도 정치, 경제, 종교 등 분야에서 수메르어를 사용하게 되죠. 국가간 문서로 주고받은 점토판이 많이 발견됐어요. 우체부가 편지 전달하듯이 짊어지고 나라 간을 이동했지요. 수메르어의 흔적은 세계 어떤 나라 말이든, 예외없이 조금씩 들어가 있다고 보면돼요. 특히 우리나라 말에 많이 포함돼 있어요.
당시에는 수메르어를 모르면 무식한 사람이었죠. 어려서부터 학교가 있었는데 ‘에둡빠’라고 불렸죠. 최초의 학교예요. 졸업하면 ‘둡쌀’이라는 직위를 주는데, 문서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서기관이라고 할 수 있죠. 둡쌀만 되면 어디가서든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였죠. 문서를 대서해 주는 직업인데, 오늘날로 보면 변호사 노릇을 한 거죠.
수메르어를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알면 컬쳐(문화)를 통해 문맥이 살아납니다. 히브리사람들이 가나안까지 오면서 얻은 별명중에 하나가 ‘싸가지’였는데, 도둑놈이라는 뜻 입니다. 긴 여정에 식량 등의 물물교역에서 거부를 당하기도 했을 텐데, 늘 식량을 훔칠지 모르는 도둑놈이라는 오해 속에 경계의 대상이 됐을 것입니다. 단어를 통해 히브리인들이 겪었던 억울함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말 가운데도 싸가지라는 말이 있지요?
아마 월키 박사는 수메리안을 아는 사람이 와있느다는 데에 큰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과학과 종교를 분리하곤 하는데, 그래서는 안돼요. 과학 지식을 부정해서도, 일반 학문이라고 무시해서도 안돼죠. 그런데 미국의 흐름은 이 두 가지를 분리하는 것이에요. 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은 하나님 밑에 있지요. 신학을 능가하는 학문은 없어요. 하나님이 자연 현상을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과학은 과학으로서 틀리지 않아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진리 앞에서는 굴복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믿는 고집을 꺽지 않아요. 미국인도 한국인도 마찬가지예요. 인간들의 지식이 너무 모자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 뿐이지요. 세 살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무궁한 지식을 깨달으려고 하는 거죠.
‘우리는 모르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갖고 있으면 됩니다.


미국 하버드대의 신입생은 학습 능력을 시간당 200쪽 독파 능력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수준이 그 아래인 대학들은 150쪽, 120쪽까지로 낮춰 잡기도 하죠. 하버드대의 박사과정 쯤 되면 시간당 400쪽이 됩니다. 그리고 이 박사과정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800쪽쯤 되죠.
여기서 200~800쪽은 그 내용을 다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미국인은 어릴 때부터 그런 독서 훈련을 시킵니다. 그래서 같은 한 가지를 알게 되도 연상 작용을 통해 스무 개, 서른 개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니 그들과의 경쟁이 어려운 것입니다. 학생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요. 그래서 처음 예일대 등에서 강의할 때 정말 긴장 많이 했지요. 철저하게 준비해가지 않으면 안되지요.

암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게 유대인들의 방식이지요. 특히 어려서부터 하는 암기는 뇌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미국사람들은 이해를 먼저 하려 하기 때문에 암기에는 상대적으로 약하죠.

어린아이들이 히브리어 같은 말을 공부해도 도움이 될까요?
그럼요. 모국어인들 어린아이들이 문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뜻이 뭔지 몰라도 상관없어요. 그러나 그게 다 머리에 남아요.
히브리 유니언대는 박사과정을 다 마치고 논문이 통과된 뒤에도 구술시험을 봅니다. 다른 대학에는 없는 히브리 유니언대만의 전통인데, 여기서 탈락하는 학생들이 꽤 있어요. 울고 갑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공부를 하거나 학위를 할 기회를 주지 않지요. 월키 박사가 이 얘기를 듣더니 “그렇게 잔인한 과정이 있느냐.”고 하더군요. 이 시험이 있는 날이면 전교생이 기도를 해주는 전통이 있을 정도예요. 이렇게 진행됩니다. 먼저 전공 교수들과의 문답을 해야 합니다. 끝나면 모든 교수들 앞에서 3시간 동안 구술시험을 치르는데, 여기서 온갖 질문이 쏟아집니다. 감당이 안될 정도입니다. 저는 전공분야에서 예상 질문을 만들어 달달 외우고 갔지요. 질의응답을 시작한 지 한 20분쯤 지나 학장이 일어나서 오더니 “이렇게 잘하는데, 더 질문할 것도 없겠다. 축하한다.”면서 악수를 건네는 거예요. 학장이 그러니 다른 교수들은 질문도 못했지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한국사람하고 비슷해요. 열심히 하는 학생들한테는 조금 못해도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열심히 하는 학생은 시험볼 때도 와서 슬쩍슬쩍 방향도 잡아주고 그래요. 미국교수라면 어림도 없는 얘기거든요. 저도 그저 계속 암기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복하는 수밖에 없어요. 뭐든 하나 할 때 계속 반복해서…. 그게 엑스퍼트(전문가)가 되는 길이지요. 피아노 연주가가 똑같은 곡을 2000번쯤 연습한다잖아요. 횟수가 1000번, 2000번 될 때 달라지지 않겠어요. 한번 실험해 보세요. 창세기만 100번 읽겠다 생각해 보면.
박 아브라함 원로목사님이 그렇게 하신 거에요. 아마 성경을 다 외우실 거예요. 하나님께는 직접 말씀을 받고, 본인은 본인대로 그렇게 읽으시고. 그러니 누구든 당할 수가 없는거예요. 설교 잘한다는 분들 많지만 얼마나 깊이가 있는 건지. 원로목사님은 그런 파워가 있으신 분이지요. 하고 싶은 것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죠. 그게 그렇게 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저는 없는 것 가지셨으니 존경하는 겁니다.
저도 (미국 유학 등) 여러 조건이 허락되지 않았다면 박 원로목사님이 가셨던 그런 방향으로 갔을 것 같아요. 혼자하는 건 그 방법밖에 없거든요. 박 목사님이 하셨던 그 방법이 옳고 사실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강신택 박사는 구속사 시리즈 제7권 「영원한 만대의 언약 십계명」의 추천사에서 “수많은 학자들의 글을 접해 보았지만 이렇게 마치 그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것처럼 생동감 있게 증거하는 책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저자의 십계명 설명은 다른 학자들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원문에 철저하게 근거한 구속사적 해석은, 실로 원문 성경의 구석구석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경이로운 주석이다”라고 말했다 .

글_ 이지운 기자

◆ 관련기사 : "동방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될 것" (수메르어의 세계적 대가 강신택 박사 인터뷰)
http://www.champyungan.com/bbs/board.php?bo_table=2_1&wr_id=103&sca=&sfl=wr_content&stx=%EA%B0%95%EC%8B%A0%ED%83%9D&sop=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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